단막극이 영화랑 뭐가 다른데? 〈드라마 스페셜 2022 - 얼룩〉 리뷰

 
단막극은 영화보다 협소하다. 찾아보니 단막극이 영화보다 더 메인플롯에 집중하는 장르라고 한다. 아무래도 러닝타임이 더 짧으니까 당연한 수순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드라마보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보다 주제의식이 드러나기 때문인데, 단막극은 이런 영화의 장점을 닮고 있다.

개인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영화가 시고 드라마가 장편소설, 단막극은 단편소설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어쨌거나 쉽게 설명하면 각자의 매력이 있다는 거다. 이 개인적인 느낌은 기회가 된다면 다뤄 보는 것으로 하고 ‘얼룩’ 리뷰에 집중해 보자.

 

드라마 스페셜 2022 - 얼룩

 
처음으로 드라마 스페셜이란 걸 봤다. KBS에서 하는 단막극 시리즈라고 한다.

단막극? 그것도 드라마라고 할 수 있나? 영화랑은 뭐가 다른 거지? 드라마가 시작할 때쯤엔 이런 의문을 품었는데, 다 보고 나니 무엇이 다른지 알 것 같았다.

짧은 만큼 주제에 대한 집중력이 남다르다. 드라마 스페셜은 연말까지 방영한다고 하니 시간이 된다면 다른 단막극도 챙겨 보면 좋을 것 같다. 관심 있다면 추천. (KBS2 수•목 PM 9:50~)

얼룩에는 찢어지게 가난한 데다가 불행하기까지 한 가정에서 자란 주인공 지훈(차학연)이 등장한다. 유대감이란 눈곱만큼도 없고 돈 달라고 징징대기만 하는 가족 사이에서 지훈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고 있다.

음대생 지훈이 지옥 같은 집에서 벗어날 방법은 학교에서 보내 주는 유학뿐. 온갖 아르바이트를 섭렵하고 학점까지 챙겼지만 실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추천서를 써 줄 수 없다는 교수의 대답만 돌아온다.

지훈은 대리운전을 하다 후배 연준의 집에 두고 온 지갑을 찾기 위해 연락을 하는데, 뜻밖의 소식을 알게 된다. 연준이 개강 때까지 집을 비운다는 것.

지훈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피아노에 손을 대고 만다. 잘못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기 시작하고. 분명 피아노만 치려고 했는데, 어느새 지훈은 연준에 집에서 먹고 자며 자기 집처럼 머무른다.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 손님은 집 주인 연준과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한 시영. 변명으로 잘 넘어가는 듯했지만, 결국 시영은 모든 걸 눈치채고 신고하려는데….

다시보기는 웨이브에서

—여기서부턴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얼룩은 이 드라마의 제목이자 가장 핵심적인 메타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얼룩은 천장의 건반 그림에 벌레가 남긴 얼룩. 이건 드라마 전반에 대한 암시이자 주제 의식을 대놓고 드러낸 부분이에요.

지훈이 치던 피아노를 시영이 물티슈로 닦는 장면인데요. 얼룩은 지워 마땅한 지저분한 것이잖아요. 이 장면은 지훈이 (시영에게) 얼룩임을 암시해요.

반대로 시영이 지훈의 계획의 얼룩이기도 하지만요.

(제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에요.) 대리운전 하다 연준을 집까지 데려다주는 데 피아노를 보고 이성이 나가는 걸 센서등이 꺼지는 것으로 연출한 게 직관적이면서도 감각적이라고 느꼈어요. 연준의 소리와 동시에 다시 켜지는 센서등까지.

여기서도 얼룩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지훈입니다. 연준이 배경처럼 자연스러운 것과 대비되게 지훈은 배경에 섞이지 못해요. 후줄근한 옷에 그보다 더 어색한 태도.

여기까지 나온 모든 얼룩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모두 가난이 만든 얼룩이라는 거예요. 그래도 이때까진 괜찮았어요. 가난은 지훈의 마음속에서 더 큰 얼룩으로 변해 버려요.

결국 이렇게 더 끔찍한 얼룩을 남기고 말죠. 이후 지훈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에요.

천장에 남긴 얼룩이 지워지지 않듯, 지훈의 가난은 지워지지 않아요. 하지만 그땐 적어도 피아노 위에 흔적을 남기진 않았는데. 물티슈로 닦더라도 말이에요. 지훈이 저지른 얼룩은 지워지지 않을 거예요.

여기까지가 드라마가 말하는 바고, 이 이상 생각하는 것은 시청자의 몫 같아요.

지훈은 세상의 얼룩이에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공지훈이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범죄는 분명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랬을지를 고민하는 일이 범죄를 옹호하는 일처럼 여겨지진 않았으면 해요. 지훈이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고, 왜 그렇게 했는지 적어도 한 번은 고민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만 또 다시 생길 얼룩을 방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불가능하겠지만 저는 세상에 공지훈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의 얼룩이기 때문이 아니라, 공지훈이 아플 테니까요. 그래서 1차적으로 천장의 얼룩이 없었으면 좋겠고, 2차적으로 건반 위의 얼룩이 없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