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하이틴 영화가 특별한 이유, 〈나의 소녀시대〉 리뷰

오랜만!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처음으로 본 것은 2016년이었다. 당시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다. 내 인생에 가장 짙은 물얼룩을 남긴 사람. 인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에는 내 인생의 연혁이 보잘것없이 짧기는 하지만 일단은.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한참 이런 키워드가 유행하기 시작했었다. 인생 OO. 예를 들면 인생 노래라든가 인생 책, 그런 것. 자연스럽게 그런 키워드로 이야기도 많이 했었고.

뒤에 나올 이야기는 너무 뻔하니까 생략. 그냥 그 사람의 인생 영화가 이 영화였다는 문장의 서두를 굳이 장황하게 해 봤다. 나름 이 영화랑 잘 어울리지 않나? 아님 말구.

나의 소녀시대, 我的少女時代, 2015

로맨틱 코미디
진옥산
왕대륙, 송운화

당연히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 사람과 함께 이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영화를 같이 본 건 친구였다. 물론 좋은 추억이 됐지만… 미안하게도 그때는 그 사람과 취향을 공유하고 싶은 급한 마음이 더 컸다.

어떻게 봤었는지 당시엔 제대로 본 줄로만 알았는데, 이번에 보니 장면 대부분이 머릿속에 없는 상태였다. 그래, 생각해 보면 내가 엉망으로 보기는 했었지. 내 머릿속은 24/7 그 사람뿐이었으니까.
 
그리고 내게 다시는 보지 않을 유치한 영화로 남았다. 한 장면도 집중 못 한 주제에 무얼 평가하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건방진 나는 그랬다.

"학교를 대표하여 구역싸움을 하고 보호비를 받는 학교 짱"

솔직히 유치하기는 하다. 이 사진만 봐도…. 하이틴 장르가 다 그렇지.

세상에 있는 스윗함은 다 끌어모은 것 같은 전교 1등 서브남주에 평범한—척 하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은— 여주, 남한테 절대 안 지는 양아치 재질 남주. 클리셰 범벅 작품 싫어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하이틴은 원래 이 맛에 보는 것.

물론 이 작품만의 매력은 따로 있으니 벌써 실망하지는 말자.

"만약 당신이 남자라면 들려주고 싶다 당신들이 한 번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평범한 소녀와 그 소녀의 이야기를"

“나의 소녀시대”라는 제목답게 이 작품은 추억을 중점으로 그려졌다. ‘다른 하이틴 영화도 마찬가지잖아?’라고 할 수도 있지만 확실히 다르다.

하이틴 영화 대부분은 여자 주인공을 정형화된 ‘첫사랑’ 이미지로 묘사하지만, 이 영화는 주인공 린전신을 보다 평범하고 생생한 ‘10대’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건 차별화된 디테일 덕분이다. 하이틴(특히 넷플릭스) 영화를 보면 고등학교 시절엔 갈등, 관계가 전부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디테일은 오롯이 소품의 몫이고.

"그때 소녀들은 연예인의 사진을 가장 많이 산 사람이 결혼할 자격이 생긴다고 믿고 있었다"

이제 “나의 소녀시대”를 보자.

팬심을 10대 시절의 추억 요소로 부각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일반적인 하이틴 영화라면 소품처럼 쓰다 버려질 요소였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를 메인 플롯에 자연스럽게 녹여 영화의 핵심 요소로 만들었다.

그 시절 추억과 장르에서 보여 줄 수 있는 판타지를 절묘하게 섞었고, 효과는 굉장했다. 앞서 말했듯 주인공 캐릭터를 보다 생생한 10대처럼 느껴지게 했고, 팬심이라는 추억에 보다 풍부하게 공감하도록 했고, 메인 플롯이 클리셰를 크게 벗어나지 않음에도 다른 영화와의 차별점을 가져갔다.
 

 

무엇보다 판타지에 대해서 말해 보자면, 하이틴 장르는 추억과 판타지를 적절히 섞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재미와 만족감을 주는 장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완벽하게 충실한 작품이 아닐 수가 없다.

여주의 말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귀담아듣는 남주. 여기까지는 그냥 그럴 수 있지 싶은데. 그것을 풍성하고 특별하게 표현했다는 점이 아무리 칭찬을 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날 밤 유성에게 소원을 빌었어 그녀의 소원에 내가 있기를"

한 가지 놀랐던 점은 주인공들의 스킨십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것이었다. 키스는커녕 포옹 한 번도 없었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자연스러웠어! 영화의 흐름을 생각해 보면 이게 맞는 것 같다.

서사가 꽤 좋았다.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좋아하고 있다는 걸 잘 느낄 수 있게 해 준 것 같다. 서로를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변화하는 모습은 절로 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기특했다. 특히 좋았던 것은 주인공이 현재에서 다시 반짝반짝하게 살아갈 용기의 바탕이 됐다는 점이다.

'린전신에게'

남자 주인공 시점을 표현하는 장면 중에서는 지나치게 설명적이라는 인상을 받은 부분도 있지만, 그 시절을 크루아상처럼 기억하게 만들어 주는 즐거운 포인트다.
 
우리는 함께 추억을 공유하면서 그 시간을 보다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동시에 각자의 시간을 겪었기 때문에 더 이해하기 위해 사람들은 설명이 필요한 편이다. 함께 추억을 회상하고 나면 추억은 보다 풍성하게 재구성되고, 우리는 연결된 느낌을 받는다. 결론은 이 설명적인 장면들이 이들을 더 이해할 기회와 같아서 반갑다고 할까.
 
이 영화를 머릿속으로 다시 재생해 보자면 자꾸만 크루아상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든다. 크루아상을 한 입에 넣었을 때 결들이 입안을 자극하는 것처럼, 겹겹이 쌓인 장면들이 소담스럽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