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대신 도망쳐 드릴게요, 〈백만엔걸 스즈코〉 리뷰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살고 싶다. 사람에게 치이다 못해 지쳤을 때,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정말로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훌쩍 떠난 여자가 있다.

 

영화 百万円と苦虫女

백만엔걸 스즈코(2008)

드라마
타나다 유키
아오이 유우, 모리야마 미라이

이 영화는 주인공 스즈코가 억울한 사연으로 전과자가 되면서 시작한다. 터무니없는 죗값을 치르고 나서도 스즈코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집에서도 골칫덩어리가 된 것만 같은 스즈코는 집을 나가기로 결심한다. 100만 엔을 모아서.

처음엔 바다, 산, 그리고 마지막엔 원래 살던 도쿄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의 소도시. 100만 엔을 모으면 다시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떠나겠다는 생각으로 스즈코는 겨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사람에게 질릴 대로 질린 스즈코지만 결국 그를 성장하게 한 것도 사람이다.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 주는 누군가는 언제나 힘이 되는 법. 특히나 경계했던 사람이 사실은 내 생각보다 더 좋은 사람이었다든가 하는 그런 경험은 다시 사람을 믿어 볼까 하는 작은 용기를 준다.

거처를 옮기면서 스즈코는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게 스즈코가 조금씩이지만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줬다고 생각한다. 스즈코는 처음에 다른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해야 할 말도 못했지만 점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결정적으로 스즈코를 둘러싼 껍질을 깨 버린 것은 동생 타쿠야의 편지였다. 자신을 보며 도망치지 않겠다는 동생의 결심은 스즈코가 지금껏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고, 스즈코는 백만엔걸 삶을 청산하고 세상과 마주하기로 결심한다.

열린 결말이라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스즈코는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 이번에는 온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떠나기로 했다. 이전보다 더 성장한 모습임은 틀림없다. 새로운 곳의 스즈코가 지금까지의 스즈코와는 분명 다를 것이란 걸 부정하는 사람이 있을까.

열린 결말을 굳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는 편은 아니지만, 스즈코가 떠난 닫힌 결말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괜히 이야기해 보고 싶다. 스즈코는 정말 떠났을까? 그건 관객이 스즈코의 이상적인 성장을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소도시 속 스즈코의 삶은 분명 완벽하진 않았다.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자신을 털어놨고, 이해받았고, 친밀한 관계까지 발전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멀어졌고, 오해했고, 헤어져야만 했다.

스즈코가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지만 도망의 반복이기도 하다. 결국 실패했기 때문에 떠나는 거니까. 처음부터 솔직하게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고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면 스즈코는 그곳에서 더 빠른 시작을 하지 않았을까. 그걸 하지 못해서 스즈코는 다음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거다.

스즈코는 쉽게 실패라고 단정한 것 같지만, 나는 결말까지도 실패라고 느끼지 않았다. 용기를 내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으니까. 만나기 위해 헤어지는 것이라고 했던가. 올바른 시작을 위해 잠시 헤어졌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물론 나는 스즈코가 떠났다는 결말도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얽매이지 않고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스즈코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으로 만남을 위한 헤어짐을 하고 싶은 거니까. 그리고 여성의 결말이 사랑으로 수렴하는 것은 고리타분한 클리셰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즈코의 방황은 결국 사람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을 마주보는 것부터가 스즈코의 시작이다. 나는 스즈코가 더 도망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솔직하게 어떤 결말이든 마음에 들지만 이런 결말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스즈코의 섬세한 감정선은 영화의 아쉬운 짜임새를 덮기 충분했다. 덕분에 나는 스즈코와 함께 삶에서 도망친 것만 같았다. 거기서 얻은 메시지들을 굳이 이 글에 담고 싶지는 않다. 그저 긴 여행을 다녀온 것만 같다고 말하고 싶다. 다만 문득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이 영화를 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