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리뷰 ｜ 15분 동안 다른 사람이 되어 보세요!

난 이런 실험적이고 신선한 코미디를 좋아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이 작품은 글쎄? 누군가에게는 세계관을 뒤집을 명작이겠지만, 이 작품 나랑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적어도 할 말이 많긴 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좋은 작품이고, 왜 나에게는 맞지 않는지 이 글에 기록해 보고자 한다.

 

 

영화 Being John Malkovich 포스터

존 말코비치 되기(1999)

 
코미디

스파이크 존즈

 

 

 
가난하고 별 볼 일 없는 인형 조종사 크레이그가 명망 높은 배우 존 말코비치의 의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신선한 내러티브

 

보통 이 작품 이야기를 하면 주제나 메시지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그건 그렇게 참신하다고 느끼진 않았다. 영화 속에 담긴 메시지는 자주 하는 사유들이니까. 사실 어떤 작품을 보더라도 참신함을 잘 느끼진 않는다. 그렇지만 내러티브는 다르다. 나쁜 놈이 당연히 벌 받는 특별할 것 없는 플롯이지만, 그를 표현하는 내러티브는 충분히 신선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맥신이라는 인물이 이 부분에서 톡톡히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영화는 주로 맥신의 개성과 감정으로 서사가 비틀리고 흥미롭게 전개된다. 다른 캐릭터들이 응당 내놓아야 할 값대로 답을 내놓는다면 맥신은 변수 같은 거다. 보면서 맥신이라는 핍진성 없는 캐릭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캐릭터가 매력적이라 수긍하게 됐다.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시각적 즐거움

 
나는 이 작품이 시각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상 예술만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연출을 통해 영화에 영상미를 더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영상미로는 하나도 빼놓을 장면이 없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신경 쓴 티가 많이 난다.
 

 
인형극처럼 메타포와 미장센이 강조된 장면도 일품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말코비치의 의식 속을 표현한 두 시퀀스다. 아마 내가 초현실주의적 표현을 좋아하기 때문일 거다. 영화 전반적으로 초현실적인 무드가 돋보이는 작품인데, 그 표현이 절정에 달한 장면이 그 두 시퀀스라고 생각한다. 인물과 장소의 경계가 허물어진 이 장면들은 의식이라는 혼돈의 세계를 유쾌하고 아름답게 풀어냈다.
 
연출이 아주 인상적이라 감독에 대해서 조사를 살짝 해 봤는데, ‘스파이크 존즈’가 영상미 좋은 작품을 만들기로 유명한 감독이라고 한다. 스파이크 존즈의 대표작으로는 이 작품 외에도 ‘어댑테이션‘, ‘그녀’ 등이 있다.
 
 

<스포일러 주의> 사랑과 자아, 그들의 감정선

 
이 작품에서조차 사랑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인물들은 각자의 이상향으로 흩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하나를 쫓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 하지만 이것이 인물들의 최종 목적이자 행복해지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사랑으로 하여금 인물들은 자신의 자아를 실현할 뿐이다.
 
주인공 크레이그는 아내가 있으면서도 맥신이라는 매력적인 여성을 보고 단번에 사랑에 빠진다. 크레이그가 역겹고 싫은 것을 떠나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내인 로테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 크레이그와 로테의 집에서 한 번도 로테는 크레이그를 사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동물은 그렇게 끔찍하게 사랑하면서 말이다. 왜 결혼했나 싶을 정도로 둘 사이에는 애정이 없어 보이는데, 로테는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결혼했고, 아이를 가지고 싶어 했고, 동물들을 자신의 아이처럼 지극정성으로 돌보곤 했다. 그것이 로테의 (여자로서의) 사랑이자 자아실현이었지만 말코비치가 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성지향성을 깨달으며 혼란을 겪게 된다.
 
로테가 맥신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보다 쉽게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로테가 이런 욕망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맥신이 돈과 명예라는 욕망을 쫓기보다는 진정한 사랑을 선택해 삶의 의미를 찾은 덕분에 그 둘은 행복해질 수 있었다. 존 말코비치라는 이름과 몸뚱이 따위가 필요하지 않은 진정한 사랑. 이것은 크레이그도 원하던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허락되진 않았다.
 

 
크레이그는 결국 사랑을 선택했지만 결정적으로 “짝사랑”이었고, 맥신이 말코비치의 신체를 사랑한다는 가정하에 그의 몸을 가졌더라고 해도 괴로웠을 것이다. 초반부 맥신의 인형으로 인형극을 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크레이그가 원하는 사랑은 보잘것없는 인형극 조종사 자신을 이해해 주며 사랑해 주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말코비치의 몸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 말코비치로서 누릴 수 있는 많은 특권과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여자들을 제쳐 두고서 맥신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오롯이 자신으로 존재하며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었다. 말코비치가 된 것은 크레이그 인생에서 가장 큰 악 수를 둔 것이다.
 
자신으로 살고 싶으면 절대 자신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크레이그로 살았다면 노력이 빛을 발할 날이 왔을지도 모르는데. 크레이크로도 진정한 말코비치로도 남지 못했던 그는 그래서 실패한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남의 의식 속에 빌붙어 사는 삶, 어쩌면 어중간한 그에게 어울리는 엔딩일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기는 하다. 
 
 

뇌를 씻어 버리고 싶은 작품

보는 내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영화의 문제라기보단 개인적 성향 탓에 가깝다.

나는 자아가 꽤 강한 편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나뿐만 아니라 세상을 그렇게 보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 개인의 자아는 결단코 침범해서는 안 되는 성역이다. 나는 내 존재를 의식으로부터 인지한다고 하면 내가 이해가 될까?

그런데 이 영화는 자아라는 개념을 허물다 못해 인물의 자아를 망가뜨려버린다. 본능적인 불쾌감이 단전에서 치고 올라오다 못해 뇌까지 녹아 버리는 느낌이었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순간엔 누구나 합리적이지 않은 감정들을 느끼곤 하지 않나? 그런 영화였다.

 

역설적으로 이 점이 이 영화가 괜찮은 작품이라는 걸 방증하는 것 같다. 누구나 그런 생각은 한다, 내 몸에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거나 다른 사람의 몸에 내가 들어가거나 하는. 그러면 나는 누구일까? 하는 철학적 고민까지도. 하지만 금세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곤 한다. 우리 삶에선 결국 그럴 일이 없고, 더 재밌는 상상은 널렸으니까. 이 영화는 그런 생각을 눈으로 꽂아 넣는 것 같다.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불쾌함을 느낀 적이 없다. 본능적으로 피해 왔을지도 모르고. 어찌 됐거나 나에겐 기회나 다름없다. 아직까지 마주할 용기는 없지만. 적어도 이것은 말할 수 있다. 나는 사실 내가 아니라 다른 형이상적 존재이고, 인형극처럼 지금의 나를 연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이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직까진 몸이든 의식이든 무언가를 주라느니 단정 짓는 일은 아직 하기 싫다. 어쨌든 지금의 나는 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이 영화가 2시간을 할애할 만한 가치가 있냐 묻는다면 내 대답은 “Yes”다.

내가 지금까지 포스팅한 영화 중에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물론 나는 이 작품이 개인적으로는 불편할 따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주기도 하고, 신선함을 가졌으며, 예쁘기까지 하다. 분명 어떤 이들에게는 아주 재밌는 영화일 것이고, 이 작품으로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당신이 될 수도 있다. 이 정도면 이 영화를 봐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이 작품은 현재 왓챠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