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호 죽은 이유 궁금해? 영화 〈20세기 소녀〉 리뷰

 
이 포스팅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20세기 소녀(2022)

우리가 알고 싶었던 첫사랑의 모든 것. 여기에 그의 죽음도 포함되는 걸까.

내가 어떤 영화를 기대하고 이 영화를 봤더라. 넷플릭스 영화라 그런가. 초반에는 넷플릭스 감성이 물씬 느껴진다고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너무 아프게 맞았다.

아마 그때쯤 내가 기대한 건 조금은 비현실적일지도 모르는 해피엔딩. 왜 그런 거 있잖아. 〈키싱 부스〉나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같은 것. 그런 걸 기대한다면 이 영화는 반 정도만 추천하고 싶다.

그래서 이 영화가 그렇게 현실적이냐? 그건 절대 아닌데.
  

영화는 지나치게 예쁘다. 더 기대하고 싶을 정도로. 그게 첫사랑인가?

이 정도면 하이틴 영화에 기대할 만한 것을 다 갖췄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그 시절 레트로 감성에 약간 유치한 소품, 10대의 감정만큼이나 다채로운 색감.

특히 눈 아플 정도로 영상이 쨍해서 좋았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니까.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엔 세상이 정말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은데. 미화된 걸 수도 있고. 어쨌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첫사랑의 기억을 하나의 앨범으로 만든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우리는 나쁜 기억을 고이고이 앨범에 간직하고 싶진 않으니까. 좋았던 기억 중에서도 더 좋았던 것들로. 이 영화는 그런 느낌.

좀 유치하긴 한데 난 그런 것도 좋더라.
  

결국 더 기대할 수 없는 것도 첫사랑이지 않을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오래된 말처럼, 이 영화의 첫사랑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조금 더 극단적인 이유로.

서사 예술의 대표적인 클리셰라 하면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것인데, 운호는 왜 죽었을까. 풍운호가 죽은 이유? 그건 생각보다 더 간단하다. 운호는 주인공이 아니니까.

이 서사의 주인공은 보라의 첫사랑이지. 운호는 아니다. 현실에 지고 마는 사랑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시절만큼은 아름다웠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우리는 지나간 사랑을 미화하고 동경하지만 그래서 한편으로 더 씁쓸함을 느낀다.

첫사랑이 영원을 표방하기 위해선 마지막 사랑이 되어야 한다. 결혼이라는 약속을 맺고 평생을 함께할 수도 있지만 그걸 더 이상 우리가 말하는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죽음으로 완벽해지는 첫사랑이라고 하면 너무 잔인한 말이겠지.

극에서 몇 번 묘사되지만, 운호에게 보라가 없던 삶은 썩 의미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조셉의 대사에서 그걸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냈고. “형의 짧은 생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누나와 같이 있었던 때라는 걸.” 보라에게도 운호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랑이지만 운호에게는 더 남다르다고 해야 할까.

현실이라면 그런 사랑도 언젠가 변할 거다. (식지 않더라도 형태는 변하기 마련이니까.) 변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영원하다고 할 수 있는 거니까. 적어도 영원히 그렇게 기억될 수 있으니까. 운호의 사랑은 운호의 비극으로 완성된다.

역설적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보라의 첫사랑인 운호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표현한 이유는, 영화의 주인공인 운호는 철저하게 보라의 시선 속의 운호라는 점? 아마 운호라는 인물에 대해 다루고 싶었다면 보라를 만나기 전과 후,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그렸을 거다.

운호의 죽음은 싫지만 운호가 죽어야만 했던 이유는 알 것 같다.
  

보라는 아마 운호를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운호나 보라가 그런 사람이기도 하고(짧은 사랑에도 영원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보다 운호의 사랑이 영원하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만으로도 평생 사랑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보라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제목이 ‘20세기 소녀’일 수밖에 없는 이유.

풍운호가 사랑했던 20세기 소녀이자, 그를 사랑했던 20세기 소녀.

글쎄? 내가 너무 확대 해석을 하는 걸까. 보라의 삶은 운호를 만나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 보라는 운호를 만나기 위해 대학을 선택했고, 운호의 말로 진로를 정했고, 여전히 결혼은 하지 않았다. (물론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보라만의 고유한 의사일 수도 있지만, 세상의 모든 남자가 아빠 같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아빠와 결혼한 엄마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꾼 사람을 잊을 수 있다고? 난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21세기에도 보라는 20세기 소녀일 수밖에 없는 거다. 그 사람의 죽음마저도 알아야만 하는 20세기 소녀.
  

그래서 나는 첫사랑의 죽음을 알고 싶냐고? 알고 싶다. 나는 그 사람의 죽음까지도 알고 싶다.

그게 나를 떠나야만 했던 이유가 아니더라도 알고 싶다. 내가 아직 마지막 사랑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내가 곧장 죽는 것이 아니라면 내 사랑은 운호의 사랑처럼 영원할 수 없겠지만, 첫사랑은 그런 존재 아닐까. 어딘가에서 숨 붙이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그런 사람. 영원히 뜨겁게 사랑할 수는 없어도 평생 잊을 수는 없는.

내 사랑이 운호는 될 수 없어도 보라는 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죽음을 모르고 싶지는 않다. 기꺼이 가슴을 찢는 고통을 겪어서라도 그의 죽음까지 알고 싶다. (물론 부디 오래오래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먼저다.)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풋사랑으로만 그려지는 첫사랑이 깊은 사랑으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그때는 정말 사랑했지만 지금 보니 풋풋했고 아련한 좋은 추억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 첫사랑 영화의 보통인데, 이 영화는 첫사랑에 영원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엮음으로 멜로의 깊은 감성을 더했다. 기대한 대로 흘러간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좋았다. 내 첫사랑도 그렇게 가볍지는 못했으니까 더 공감도 되고. “그래, 이런 첫사랑도 있지.”라는 덤덤한 위로를 받은 것 같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