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블스 플랜 vs. 더 지니어스 | 〈데블스 플랜〉 리뷰

내게 인생 예능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더 지니어스〉라고 대답할 것이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것에 인생이란 수식어를 붙여 보기도 했다. 그 정도로 예능이라는 분류에 국한되지 않고 그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좋아하던 아이돌이 나오는 음악방송은 보지도 않으면서, 정종연 PD의 후속작 〈소사이어티 게임〉을 꼬박 챙겨 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더 지니어스와 관련한 것이라면 티끌 하나까지 찾아봤다.

지금도 더 지니어스 일부 출연자가 나오는 콘텐츠는 과감하게 진입하곤 한다. 그 사람들이 보여 줬던 천재적인 플레이의 재연을 기대하지만, 그런 게 없어도 응원하게 된다. 이런 게 팬심이겠지.

지난해, 더 지니어스의 후속작이라고 할 만한 〈데블스 플랜〉이 공개됐다. 나중에 봐야겠다 하며 미루기 바빴는데. 이제 여유도 생겼겠다 안 볼 수 없잖아?

〈더 지니어스〉 팬이 쓰는 〈데블스 플랜〉 리뷰

데블스 플랜(2023)

데블스 플랜

정종연
허정희, 정다희
곽튜브, 궤도, 기욤 패트리, 김동재, 박경림, 부승관, 서동주, 서유민, 이시원, 이혜성, 조연우, 하석진

이 포스팅의 내용은 주관적인 생각임을 밝힙니다.

※ 스포일러 주의

 

더 지니어스 - 𝒳 = 데블스 플랜

이 작품은 더 지니어스를 빼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더 지니어스를 잇는 작품이라는 것을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에서 보여 줬기 때문에.

하지만 두 작품을 비교선상에 두는 것은 또 무리인 것이… 모든 면에서 더 지니어스가 낫다고 느낀다.

특히 더 지니어스 특유의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인상이 사라졌다. 인상은 여러 측면에 의해 만들어진다. 여러 측면에서 아쉬움을 많이 느낀다는 뜻이기도 하다.

1. 사람들을 놀라게 할 기발한 플레이의 부재

더 지니어스에서는 매 시리즈 소위 천재라고 불리는 플레이어들이 등장했다. 그들이 보여 주는 명장면들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큰 쾌감을 줬다.

두뇌 서바이벌을 보는 큰 이유는 뛰어난 활약을 보기 위해서인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그런 충격적인 플레이는 비교적 만나지 못한 것 같다.

내 생각에 플레이어들의 역량 문제보다는 준비한 게임들의 장치가 그런 장면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 같다. 대부분의 게임이 개인의 역량보다 연합 꾸리기를 요구하는 것도 그렇고.

 

이것을 특정 플레이어의 플레이 기조를 탓하는 의견도 있지만 거기에 별로 공감을 못하겠다. 서바이벌 게임에서 생존 추구는 당연하고. 다수, 혹은 자기와 우호적인 플레이어의 생존을 바라는 게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오히려 그게 가능한 시스템 문제가 더 컸던 것 같다.

 

2. 흥미와 긴장감을 유발하는 시스템 삭제

'데블스 플랜'의 상금 매치와 '더 지니어스'의 데스 매치

설계상 플레이어들은 주로 연합에서 자유로운 상금 매치에서 개인 역량을 드러내게 되는데. 데스 매치를 대체한 상금 매치로는 시청자의 긴장감을 유발하기 어려웠다. 시청자에게 우승자의 상금이 줄거나 느는 게 무슨 대수라고.

 

아무리 생존과 연관된 피스가 걸려 있고 경쟁이 가미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협동이고, 탈락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경쟁자를 제거할 수 있는 데스매치에 비해 보상도 적다.

 

상금이니 뭐니 하더라도 서바이벌에서 가장 큰 중요한 것은 벌칙은 생존과 탈락이고 그다음이 상금인데. 매치 자체가 번외 게임처럼 데블스 플랜이라는 서바이벌 게임과 살짝 동 떨어진 파트 같고, 플레이어가 활약을 해도 비교적 사소하게 느껴진다.

 

'데블스 플랜'의 감옥

감옥 시스템도 다른 프로그램에서 등장한 소재라 신선하지 않았다. 게다가 수감의 주요 페널티가 고립과 상금 매치 불참이기 때문에 매치 보상과 비례하게 수감 리스크가 줄어 그야말로 노잼 시너지를 발산했다.

말 그대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생존을 걸고 싸우는 게 아니라면 어떤 싸움을 해도 큰 의미가 있을까?

적어도 쇼 측면에서는 감옥 수감자끼리 사이좋게 퍼즐 풀기보다는 경쟁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퍼즐조차도 시청자는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얼마나 어렵고 쉬운지 알 게 뭐야?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출연자가 잘해도 전혀 체감이 안 된다.

 

보상도 고작 피스 한 개. 복수나 화려한 부활을 원했다면 다음 매치 관련 힌트나 혜택처럼 직접적인 매치 관련 보상을 주는 더 극적이었을 것 같은데. 감옥 가서 상금 매치에 참가도 못 하는 사람이 피스 얻을 기회가 매번 있다는 것도 웃기고.

 

이럴 거면 수감자는 왜 둘인지. 패자끼리 연합하라고? 차라리 혼자면 고립이라는 리스크가 더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3. 기준이 불분명한 보상과 페널티, 그리고 재화

'데블스 플랜'의 피스와 '더 지니어스'의 가넷

더 지니어스와 데블스 플랜에는 각각 가넷과 피스라는 화폐가 등장한다. 가넷과 피스는 비슷하지만 확실히 다르다. 피스는 가넷보다 생존과 직결되어 있고, 게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똑같은 패배라도 페널티의 수준이 너무 차이가 난다. 어떨 때는 피스 차감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어떨 때는 피스 차감이 지나치게 크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재화가 쌓일 테니 페널티의 수준도 그만큼 커지는 거라면 납득했겠지만 기준을 파악할 수 없다. 분명 탈락자 인원을 조절하기 위해 그랬겠지만 아무리 봐도 설계가 아쉽다. 초반에 피스를 많이 얻은 사람이 피스 소진 없이 중반부까지만 생존하면 결승까지도 그냥 갈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니 감옥에서 얻을 수 있는 피스 한 개가 절대 적은 보상이 아니었지만. 피스를 적극적으로 매치에 이용하기에는 유통된 수가 적은 데다가 생존과 연결되어 어려웠고, 피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죄다 치트성 플레이였다. 적어도 나는 돈으로 찍어 누르는 플레이를 보고 싶지는 않은데. 그래서 감옥 보상이 더 아쉬운 거다. 능동적으로 역량을 발휘해 플레이를 만들 기회를 줬으면 재밌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을까.

 

근데 또 갑자기 감옥 간 사람한테 피스를 열 개나 뿌리질 않나. 물론 장치가 있었고 의도한 바는 알겠는데.

 

(1) (견제를 받아 능동적이고 강력한) 플레이어가 수감된다.

(2) 장치를 발견한다.

(3) 피스의 비밀을 푼다. →퍼즐 미션이 존재하는 이유

(4) 다시 감옥으로 돌아와 문제를 해결한다.

(5) 생존을 결고 겨뤄 보상을 얻는다.

 

이렇게 됐으면 확실히 재밌어질 뻔했다. 정보를 얻은 플레이어들이 능동적으로 문제 해결을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큰 고민 없이 정보를 흘리거나 의존하길 선택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패해 버렸고. (플레이어 간 대결 구도가 약했던 것이 이 계획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수감 리스크가 없어서 정보를 얻은 플레이어가 무언가를 감수하고 극적으로 감옥에 간 것도 아니고. 탈락을 걸고 이겼으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기에는... 오목 논란 때문에 김이 팍 새 버리고. 결승 가는 길까지 그 피스로 다 해 먹을 수 있는 구조에 결승에서도 혜택. 납득이 안 가서 결승전 매치는 보지도 못했다.

 

룰 브레이커 시즌 임요환 같은 플레이어의 등장을 경계하면서 메인 매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스템인 것 같은데. 정작 메인 매치보다는 피스에 다 잡아먹힌 느낌. 차라리 데스 매치에서 피스 베네핏을 준다고 하면 차라리 납득될 듯. 어차피 데스 매치도 없었지만.

 

4. 기억에 남지 않는 연출

'데블스 플랜' 오프닝과 '더 지니어스: 룰 브레이커' 오프닝

더 지니어스와 다른 서바이벌의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하면 연출로 남기는 강한 인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너무 아쉽다.

쇼는 그 내용만큼이나 연출의 영향이 중요하다. 쇼가 담고 있는 내용물의 가치를 어느 정도 연출이 결정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작품 연출이 너무 심심했다. 그런 연출을 할 만한 장면이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부족했기 때문일까? 글쎄. 플레이어들의 활약은 기억에 남는데.

특히나 상황에 맞는 강렬한 음악이 흘러나와서 쇼에 과몰입하게 만드는 게 지니어스의 개성이 데블스 플랜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음악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면….

더 지니어스 때는 오프닝 영상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지만 데블스 플랜은 오프닝도 살짝 아쉽다. 더 지니어스의 오프닝이 역동적이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면 상대적으로 캐주얼한 인상이다. 데블스 플랜 더 지니어스와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심심해진 느낌은 어쩔 수 없다. 그래픽은 더 화려하고 정교해진 것 같은데,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조금 아쉽지 않았나.

꼭 지니어스 같은 역동적인 느낌이 아니더라도 데블스 플랜만의 고유성이 잘 드러날 캐주얼하면서도 충격적인 연출 방향이 있을 것 같아서 시즌 2는 기대해 보고 싶다.

 

THE DEVIL'S PLAN

할 말은 더 많았는데 글이 길어져서 이만 줄여야겠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 생각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더 지니어스의 계보를 잇는다고 할 만한, 정종연 PD의 작품이 나와서 몹시 반가웠고, 보는 내내 기대감으로 즐거웠다. 응원했던 플레이어들을 다른 상황에서도 응원하듯 더 지니어스의 개성을 잇는 IP를 응원하는 것은 내게는 너무 당연한 일인 듯하다. 단순 희망회로일 수도 있지만 시즌 2는 결점을 개선한 명작일 것 같다는 말이지.

총평을 하자면 데블스 플랜이라는 말처럼 배신을 유발하는 게임을 내놓았지만, 배신을 유발할 만한 위협은 좀 부족했던 것 같다. (안전한데 누가 굳이 다른 사람을 해치겠냐고…. 사이코패스 아니고서야.) 생존에 대한 위협을 크게 강화해서 진정한 데블스 플랜으로 거듭나길 바람.